小說의 변, 웅필

 

글 백가흠(소설가)

 

 

1. 가로 본능의 초상

 

가로 변의 이름은 웅필. 1970년 전남00 , 열 살 때 서울로 이사해서 00동에서 자랐다. 장흥의 기억은 별로 없고 면목동이 실제 그의 고향이나 다름없다. 00동은 다가구주택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는 인구밀도가 높은 곳이다. 또 개발된 한쪽은 서울에선 보기 드물게 녹지 적용률도 높고 여유로운 환경을 가지고 있으나 대부분은 서울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수도 있는 가난한 동네, 골목골목 집집마다 반 지하 방엔 서너 평짜리 가내공장이 수두룩하다. 그리하여 조용한 주택가가 맞지만 80년대처럼 골목마다 아직도 사람들로 북적이는 동네다. 그래서 이주노동자의 밀집도도 높은 편이다. 공장이 아니더라도 집집마다 인형 눈깔을 달기도 하고 옷감 미싱 작업 후에 남은 보푸라기 같은 것을 말끔하게 정리하는 부업을 산더미처럼 방에 쌓아놓고 사는 집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곳에서 변은 자랐다. 그곳 시장에서 웅필은 성장했다.

웅필은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면목동을 떠나 독일 뮌스터로 향했다. 거기에서 10년이나 지냈다. 그곳에서 어떻게 지냈는지 그는 틈이 날 때마다 얘기했지만 누구도 귀담아 듣지 않았다. 당시 그는 설치미술을 했다고 하는데 시장사람들은 실상 그게 뭔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설치미술이라는 게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그것을 담을 수 있는 조각, 덩어리들을 던져놓거나 쌓아놓아 거기서 퍼져나가는 느낌을 붙잡는 것인데 그런 과정을 알지도 못할뿐더러 시장사람들은 너무나도 바빴다. 진짜 설치는 시장 좌판에 깔려 있어서 그가 면목동으로 돌아왔다는 풍문도 -후에 그가 그리는 남자가 들고 있거나 입에 물고 있거나 얼굴을 뭉개는 거의 모든 것이 그 좌판 위에 있던 것을 상기해보면 상당히 일리 있는 말이다- 시장 골목에 파다했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시장골목 사람들은 자기의 좌판에 쌓여 있는 물건들이 그가 그리는 그림에 등장하는 것을 알아보고 혹시 자기 자신의 이야기가 압축되어 한 사물로 사용된 것이 아닌지 놀라기도 했다. 그런 것을 상징이나 알레고리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건을 사러 온 사람들이 면목동에 나고 자란 화가가 면목동 사람들과 시장물건들을 그린다고 말해주어서 모든 사람이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시장사람들이 그걸 확인하기 위해 미술관을 찾기 시작했는데, 막상 그의 그림을 본 시장사람들은 그림 속의 남자가 들고 있던 사물보다도 그림 속 남자가 그인가 아닌가로 호기심이 몰렸다. 그러면서도 멀리 떨어져서 그림을 바라보면 남자가 들고 있는 사물이나 그림에 등장해서 남자를 가만두지 않는 작은 소품들이 자신의 이야기로 읽혀서 신기해하곤 했다- 그의 그림을 가까이서 보면 압사할 것 같은 압박과 강박이 느껴져서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멀리 떨어져서 그의 그림을 보기를 원했다. 혹 사람들은 그가 노리는 그 느낌이라는 것이 가까이 섰을 때 느껴지는 압박과 강박이라는 소문도 있었으니 그는 어느 정도 성공적인 화가가 된 것은 분명했다. 그것을 가장 먼저 알아봐 준 이들이 면목동의 시장사람들이라는 것이 그에게는 가장 큰 위안이 될 만했다.

 

어쨌든 그는 뮌스터에 묻혀 있던 화가로 좀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이었던지 유학 간 지 10년 만에 다시 면목동으로 돌아온다. 괴팍함이라함은 근거는 없고 다만 그가 그 시절 남긴 몇몇 작품으로 유추해 본 바, 작품들이 괴상한 것이 아니라, 작품을 보면 괴상한 느낌이 들어 붙여본 표현이었다. 또 그런 섬세함과는 거리가 멀 것만 같은데 세세하고 디테일한 감성을 갖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이러니컬하다는 얘기였다. 어쨌든 그는 십 년 만에 돌아왔는데, 그 시간은 고향으로 돌아오기는 늦었고 그곳에 머물러 있기도 먼 시간임이 분명하나, 특별히 어떤 이유가 그를 다시 동쪽으로 가게 했는지 밝혀진 게 없다. 오로지 그의 그림으로만 그런 이유를 가정할 수 있었다. 그렇다 보니 다만 그의 서정이 동쪽의 면목동에 머물러 있었던 게 아닌가, 추측할 뿐이다.

면목동으로 돌아온 그는 본가 근처에 작업실을 얻고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렸다고 하는데, 그는 면목동 시장에서 자라서 그런지 유난히 사람 그리는 데 특별한 재주가 있었던 듯하다. 그가 다시 동쪽으로 돌아온 이유를 가늠해볼 수 있는 지점이다. 그의 특이함은 한두 개가 아니었는데, 그 중 하나가 그는 붓질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가로로만 한다는 것이었다. 그 대목에서 사람들은 그가 오랫동안 뮌스터에서 면목동에 이르는 가로본능의 서사를 품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가로로 출발해서 돌고 돌아 다시 처음에 도착한 웅필은 그리하여 가로본능의 작가가 되었다.

그러니까, 小說의 변은 그가 00에서 태어나 열 살 때 서울의 00동으로 이사 성장한 뒤, 대학졸업 후 독일의 뮌스터에서 10년 유학을 하고 2007년 면목동으로 다시 돌아와 한국에서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 3년 쯤 지난 후인 2009년 어느 날부터 얼마 전까지의 일을 얘기해보려던 참인데, 이 글을 다 마친다고 하더라도 그러니까, 아직 결말이 없는 소설의 도입부, 언제나 바뀔 수 있는 서사의 첫머리에 대한 변인 셈이다.

 

2. 리얼리즘은 앵글 안에 산다

 

그는 서쪽 뮌스터에서 동쪽 면목동으로 이주한 후, 줄곧 자기 얼굴만 그렸다. 그런데 면목동 시장사람들은 그의 그림을 보자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처음엔 자기성애가 심한 사람인가, 해서 시장 사람들이 독일에서 온 그를 피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사람들이 그림을 자세히 보니 그의 얼굴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다 다시 보니 화가 자신의 얼굴이었고 풍문을 듣고 찾아가 다시 보니 이번엔 그림을 보러 온 사람 얼굴이 그림 안에 담겨 있었다.

아니 이거 철물점 김 씨 아냐?”

철물점 옆에서 떡볶이를 파는 종석이네가 맨 처음 그림을 알아보았다. 철물점을 하는 김 씨도 놀랐다. 처음 마주한 그 그림 안의 얼굴은 뮌스터에서 돌아온 웅필이 아니라, 김 씨 자신이라는 것을 알아보았던 것이다. 대일밴드를 덕지덕지 붙여서 쭈그러진 그 얼굴이 자기라는 것을 알아버린 것이다. 그는 얼마 전 얼굴에 난 상처와 오랜 전 생긴 깊은 상처를 대일밴드로 가리고 살았는데, 그날 이후 철물점 김 씨가 낸 소문을 듣고 사람들은 그 그림에 등장하는 이가 서로서로 자기라고 말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얼굴에 난 상처는 철물점 김 씨에겐 잠깐 난 상처가 아니라 유년의 한 기억이 새겨진 것인데 지워지지 않고 낫지 않는 것이었다. 그것을 매일 새로운 대일밴드로 가리고 있었는데 소설의 변이 그걸 어떻게 알고 자기 얘기를 그림에 담았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더욱 놀란 것은 대일밴드를 떼버리고 상처를 드러낸 지 오래 전이었는데도 변이 아직도 그걸 기억하고 그렸다는 것이었다.

 

소설의 변, 웅필, 그는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을 좀 특이하게 그렸다. 남자의 털을, 조금 특별하게 몸에 있는 털을 전부 밀어버렸는데, 머리털, 콧털, 수염, 얼굴의 솜털까지도 없애버리고 나니 자기가, 자기가 아니게 되었다. 그래서 그를 가리켜 자화상만 그리는 작가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었고 정반대로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사람은 철저하게 그 자신을 뺀 타자라는 사람도 있어서 다른 사람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라고 부르기도 했다. 면목동 사람들은 변이어떤 화가인지 헷갈려 했으나 그림이라는 것이 그런 다각적인 느낌이 있다면 성공적인 거라고 면목시장 반찬가게 주인인 임 여사가 주장했다.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는 눈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변의 그림에 등장하는 남자가 실은 여자였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시장 사람들이 모여들어 면밀히 그림을 뜯어보니 그럴 개연성이 충분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누군가는 아예 성이 없는 사람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럼, 사람이 아니란 얘긴가?”

건어물가게 오 씨가 신기한 듯 물었다.

사람이야 맞지, 반대로 여자, 남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많은 사람이 자신의 심정이나 이야기를 담을 수 있게 보편적인 사람을 그린 거 같어. 이렇게 무성無性으로 그려놓고 보니 다 지 얘기라고 믿는 거 아니겠는감.”

오 씨의 건어물집 맞은편 쌀집 하는 이 씨가 말했다. 시장사람들은 굉장히 그럴 듯한 대답이라고 생각했다.

자기만 그리는 줄 알았더니 다른 사람을 그리고 있었네요. 본디 사람이라고 하면 나를 포함해서 나 밖에 있는 남을 말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쌀집 옆 계란가게 최 씨가 말했다. 최 씨는 시장 통에서 유일하게 명문대학을 나온 이로 양계사업을 하다가 망해먹고 시장에서 몇 년 전부터 계란도매업을 하는 사람이었다.

시장골목 사람들은 오랫동안 궁금했던 한 물음이 풀리는 것 같았다. 소설의 변은 그러니까 한 남자로 추정되는 얼굴에 한 사람의 인생을 담고 있었는데 그림 속 인물의 몸에 털을 없애자 성도 없어지고 특정한 사람의 이미지도 사라지게 되었다. 그러자 그림 안에서 보편적인 이야기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서사의 범위로 그가 후에 小說의 변이 된 까닭이었다. 서사란, 즉 보편적 인간사이니 말이다. 그의 그림은 그리하여 광범위한 사람의 이야기가 압축되어 하나의 알레고리를 획득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그림에 대해서는 그렇게 자세하고 전문적인 것은 몰랐고 단지 자신들이 보고 느낀 것을 말했을 뿐인데, 그런 효과가 어느새 소설의 변, 웅필의 그림을 말할 때 빠지지 않는 단서가 되었다. 결국, 변의 그림 속 인물들은 면목동 골목이나 시장에서 발현되어 그것을 알아본 이들이 그곳에 오랫동안 발붙이고 산 사람들이이었으므로 뜻 깊은 일임이 분명했다. 무엇보다 서에서 동,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가로질러 온 그였으니 더욱 그랬다. 변이 그리는 그림의 진위가 그림 속에 등장한 사람들이 발견한 것과 주체가 속해 있는 공간이 면목동일 수도 있다는 가설이 시장골목의 사람들을 더욱 흥분시키는 이유이기도 했다.

서정은 각 개인이 가진 고유한 감성의 형태를 말한다. 형태라고 하는 것은 구체적인 이미지가 존재하고 또 어떤 방식이 있다는 얘기인데, 예술이라는 것은 자신이 가진 그 고유한 것들을 최초로 발견한 이들이 놀아나는 장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말을 좀 뒤집어 보면 이 예술이라는 것이 참 별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서정이라는 것이 누구에게나 다 있는 것이니, 누구나 자기 안에 침잠되어 있는 그 감성의 고유함을 발견만 하게 된다면 누구나 예술을 하는 게 가능하다는 얘기이니까 말이다. 물론 그 발견도 어렵고 형태화 시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지만 말이다. 그런데 방법이 있다는 것을 시장골목 사람들은 변의 그림을 보고 알게 되었다. 다른 서정을 알아보는 법이 그것이다. 타인의 서정은 갑자기 불현듯 찾아오고 그것이 쌓이다 보면 자신이 가진 고유함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변의 그림을 보고 자신들의 이야기가 압축되어 하나의 인물을 통해 퍼져 나오는 것을 경험한 뒤로 예술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신의 공간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타인의 서정을 발견하게 되자 뒤로 사람들은 변의 그림에서 느낌(서정) 뒤에 숨은 이야기를 찾기 시작했다.

그림 안에 있는 이야기, 바로 인간서사에 대한 궁금증은 서사의 완성을 향해 나아갔다. 서로가 자기의 이야기를 그림에서 보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혹의 자신이 알고 있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로 그림 안의 이야기를 완성시켜나갔다. 그게 가능한 이유는 우리의 서사, 인간이 겪거나 만들어낸 이야기라는 것은 그다지 새로운 것이 없이 반복되고 재현되기 때문이었다. 다만 우리가 변의 그림이 새로운 이야기라고 믿게된 것은 새로움에 대한 진위가 서사가 아니라 서정이라는 데 있었다.

 

특히 사물이 가진 압축성은 시장바닥에 굴러다니는 흔하고 흔한 사물을 통해 이루어졌고 그 사물을 통해 상징화된 이야기는 자신들의 것이라 여기게 되었다. 그것을 우리는 리얼리즘이라고 부른다. 특히 언제나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예외 없이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은 얼굴이 비틀어지고 찌그러져도 시선은 우리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다- 무성의 눈은 그림을 바라보고 서 있는 우리의 눈을 직시한다. ‘네 모습을 돌아보라. 여기 네가 있다.’ 그림 속의 無性은 말했다. 변의 그림 앞에 서면 엄청난 긴장감이 퍼졌다. 그것은 반대로는 압박과 느슨함, 강박과 여유, 정치적인 것과 비정치적인 것, 가난과 부의 주체가 스스로 자기를 직시하게 되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과정은 간단했다, 시장사람들이 변의 그림 앞에 섰을 때 보게 되었던 자기 안의 서사와 조우하고 직시하는 과정이 평범한 이들에게도 전해지게 되었다는 것. 어떤 서정과 예술에 대한 긴장감이 일반화되는 순간이다. 그 때 변의 그림은 서사를 확보하게 된다, 리얼리즘이 앵글 안에서 살아난다. 소설의 변, 서정의 형태로 말이다. 小說의 변, 웅필의 서사란 직접 스스로 카메라를 들고 자기의 모습에 한 꺼풀, 두 꺼풀 덧씌워진 가식들을 벗기고 심지어 모든 털을 다 밀어버림으로써 드러나는 자기 자신의 본연의 실체를 들여다보는 순간인 것이다.

면목동 시장사람들은 그런 과정 후에 일어나는 결과에 또 하나의 이름을 붙였는데, 진짜 존재하는 자기를 발견하게 됐다는 뜻의 실존이 바로 그것이었다.

 

3. 옥림리 23-1번지의 플롯

 

小說의 변은 면목동을 떠나 옥림리에 우리집을 짓고 살기로 했다. 개 한 마리와 함께였다. 면목동을 정리하던 그는 부쩍 알 듯 모를 듯 옅은 표정을 짓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가 시장을 떠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면목동 사람들은 혹시 그가 면목동을 떠나면 면목동을 잊을까 사람들은 서운함을 숨기지 않았다. 생선가게 아주머니 김복희 씨는 변이 십년 전 뮌스터에서 면목동으로 그가 돌아왔던 때를 상기시켰다. 검정봉지에 갈치토막을 건네며 그에게 많은 것을 당부했다.

처음 이쪽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를 잊으면 안 돼, 총각. 다시 서쪽으로 간대며?”

웅필은 알 듯 모를 듯 옅은 표정을 지었다. 생선가게 김복희 씨의 말에도 그는 멋쩍은 웃음으로만 답했다.

그는 면목동을 떠나 옥림리에 집을 지었다. 만득이가 옥림리의 우리집을 지켰다. 그는 여전했다. 면목동을 떠나왔지만 옥림리라고 다르지 않았다. 그는 동네 이장과 마주 앉아 막걸리를 기울이며 석양 앞에 선 동네 풍경을 먹먹하게 바라보는 일이 잦아졌다. 경제, 정치적인 상황은 최악의 말로를 향해 가고 있었고 그간 정부의 무능으로 세상은 회복하기 힘들 정도로 훼손되었다. 웅필은 분노했다. 내내 계속 분노에 차 있었다. 면목동 사람들은 그가 정치사회에서 받은 스트레스로 화와 울분을 참을 수 없어 옥림리로 떠났다고 알고 있었다. 하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만이 그런 분노로 가득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웅필은 티비에서 면목동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서 있는 것을 자주 보았고, 그도 직접 광장으로 나가 그들과 조우하기도 했다.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 강화도는 서쪽으로 허물어지는 태양의 집이다. 변은 매일 강화도 언저리로 함몰되는 태양을 기억했다. 옥림리에서의 하루는 작업과 세월의 무심함으로 빠르고 쉽게 마무리되어갔다.

 

변의 그림에서 조금씩 변화가 일었다. 그 분노와 화가 그림 속 인물을 더 일그러뜨릴 것 같았지만 정반대였다. 소년, 소녀들의 표정은 어떤 감정인지 알 수 없었다. 그림 속 정면을 응시하던 인물들이 하나 둘 모로 시선을 두는 일이 잦아졌다. 그의 그림이 옥림리에 와서 달라진 게 있다면 인물의 눈이었는데 도무지 어디를 보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감은 것인지, 뜨고 있는 것인지 모르게 시선을 감추는 일이 많아진 것이다. 그 변화는 서사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었다.

 

서사를 이루는 근간을 우리가 플롯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그 의미는 서사의 구조를 뜻하는 것이다. 집을 짓기 위해 벽돌을 위로 쌓을 때 집이 무너지지 않고 안전하게 구조를 만드는 것처럼 서사도 단단한 구조를 가져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것을 흔히 인과관계로 파악하기도 하는데, 그의 그림 속 인물들에게 그런 단단한 플롯이 마련되기 시작했다. 그의 인물들은 유년의 한 시절과 현재의 트라우마와의 상관을 유추하고 관계를 잇는 것에 몰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면목동의 그림들이 네 모습을 돌아보라. 여기 네가 있다. 너는 누구냐.’라고 묻는 것이었다면 거기에 시간, 인생의 인과관계라는 것을 더한 것이다. 옥림리 인물들은 지금 거기 네가 있는 이유는 바로 예전의 너 때문이야.’ 라고 말한다. 그것은 하나의 시간적인 개념이 그림 안에 녹아든 것으로 서사는 면목동의 시장 사람들보다 완고해졌다.

인물들이 들고 있던 자기 서사가 압축된 사물은 작아지고 미비한 흔적으로만 남은 사물이나, 행동 같은 것이 그것을 대신하게 되었다. 모든 것들이 희미해져 가는 시절이었다. 누구도 자기 인생이나 주장에 자신이 없었지만 목소리만큼은 어느 때보다 컸고, 그러면 그럴수록 사람들은 조용히 광장에 나가 촛불을 들거나 웅필처럼 조용히 차분한 그림을 그렸다. 분노는 안으로 쌓여 침잠될 때 또 하나의 서사를 만드는 것이다.

우리집에서 小說의 변을 지키는 만득이는 생긴 것과는 달리 굉장히 사납고 무서운 개로 성장했다. 순하고 순한 모습과는 달리 변을 제외한 모든 이들에게 공격적이었다. 옥림리에 변이 습득한 사회정치적인 분노가 만득이에게 쌓인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만득이를 쓰다듬으려고 다가오는 타인들을 만득이는 예외 없이 물었다. 다리를 물린 한 소설가도 있었고 손을 물린 한 화가도 있었다. 우체부는 우리집에 우편물을 배달할 때면 우편물을 멀리 떨어져서 툭 던져놓고는 빙 돌아서 우리집을 피해갔다.

하루는 옥림리 이장이 막걸리와 파전을 들고 우리집을 찾아왔다. 이상하게도 만득이는 짖지 않고 꼬리를 흔들었다.

만득이가 사람을 가리는가보네. 사납다고 동네에 소문이 자자한데 나한테는 안 그런 걸 보니.”

마을 이장이 웃으면서 만득이를 쓰다듬었다.

아니, 요즘 자네가 옥림리 사람들을 그린다고 해서 보러 왔네. 내 얼굴도 그린다고 해서 와 봤더니, 그림 속, 사람들이 다들 시무룩하니 무서운 표정들을 하고 있네, 그려.”

변이 씁쓸해하며 말없이 막걸리 잔을 들이켰다. 변과 이장은 붉은 빛에서 보랏빛으로 변해가는 지금, 있는 곳보다 더 먼 서쪽의 하늘을 오래도록 바라보며 막걸리 잔을 나누었다.

동쪽의 사람이건 서쪽의 사람이건 사는 건 별다른 게 없지? 진배없어, 살아보니.”

변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매일 똑같은 비극적 하루가 살아나고 있었다. 수학여행을 가던 수백 명의 고등학생이 침몰되는 배 안에서 죽어가는 것을 보았고, 아이를 잃은 가족을 모욕적으로 대하는 정부와 사람들을 묵도했다. 국가를 하나의 사업수완으로밖에는 보지 않은 세력들이 정권을 잡았을 때 일어나는 일상의 참상은 참으로 다양하기만 했다. 비극은 늘 우리 곁에서 한 발자국도 떨어질 줄 몰랐다. 면목동이라고 옥림리라고 그 비극의 장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 아니었다.

 

그 즈음 변은 다시 면목동 사람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림에 달라진 게 하나 있었는데 손의 역할이었다. 손은 얼굴을 일그러트렸고, 입을 쥐어 터지기 직전의 말을 막기도 했고, 아예 입을 가리기도 했으며, ‘하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그의 인물들은 면목동 사람들이 분명했으나 옥림리 사람들이었고, 애써 분노와 화를 감추고 억누르는 듯, 하나 같이 손을 입가에 두고 있었다. 특히 언젠가부터 철물점 김 씨, 건어물집 오 씨, 쌀집 이 씨, 옥림리 사는 형님, 이장 등 모두가 다시 그림에 등장해서 모두 장갑을 끼고 있었다. 고무장갑, 더러운 것을 씻거나 만지거나 할 때 사용하는 그것. 그림 속, 사람들은 어떤 오물이나 더러움으로부터 보호하고 막기 위해 장갑을 끼고 애쓰고 있었다. 그것은 한 생의 과거를 압축한 형태라기보다 현재와 현장을 상징하는 것처럼 다가왔다. ‘그래, 지금 힘들지. 그걸 잡을 땐 장갑을 껴. 그것을 만질 때 장갑을 껴야해. 그걸 밀어낼 때도 마찬가지야.’ 마치 그 메시지는 그림으로부터 멀리 떨어져라, 경고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옥림리 사람들은 만득이가 체득한 분노가 다시 小說의 변에게 옮겨 붙었다고 믿었다. 이장이 빛 좋은 날 우리집을 찾은 이유이기도 했다. 하지만 변은 아무 문제없었다. 사람들이 그를 잘 모르는 것뿐이었다. 그는 한 번도 자기가 그림에 새롭고 특별한 것을 기획하거나 집어넣는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문제는 서사가 아니라 서정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의도치 않게 그의 그림에는 새롭게 느껴지는 서사가 계속 등장했으니, 그가 캔버스에 퍼내는 감성이 새로운 것만은 분명한 일이었다. 감성을 이야기로 착각하기도 했으니 그는 여전히 성공적인 화가인 것은 분명했다.

화가의 성공이 뭐 별건가, 그릴 줄 아는 걸 그리는 것이 아니던가, 이야기(서사)가 자연스럽게 따라붙으면 그만이지.”

마지막 잔을 마시며 이장이 말했다. 해는 이미 뉘엿뉘엿 넘어간 뒤였다.

 

4. 편견은 주름으로 남는다.

 

사람의 털이 편견을 만들어낸다고 믿었던 것일까, 변의 그림 속, 사람들은 하나같이 털이 밀렸다. 하지만 털이 사라지니 편견도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우리에겐 하나, 하나의 이미지로 편견이 남았고, 그것을 털어내는 것은 털을 민다고 해서 사라져버리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변의 그림에는 모두가 털이 사라진 어떤 공평함이 남게 되었지만 많은 편견이 다른 곳에 남기도 했다. 사라지지 않을 바에야 모두가 볼 수 있고 알게 되는 것이 현명한 이치니까. 그것을 그가 몰랐을까, 아닐 것이다. 편견을 없애는 것이 그림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림은 여전히 보여주는 것이다. ‘, 보아라, 편견을, 사라진 털로 인해 남은 공평함을, 네 모습을보여주는 게 그림의 온전한 몫이다.

면목동 시장 사람들이나 옥림리 사람들이 소설의 변, 웅필의 그림을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일반적인 공평함 때문이고 여전한 편견을 그림에서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반대反對와 반대는 늘어만 가고, 상대相代와 상대相對는 넓어져만 간다. 늙는다는 것은 편견이 많아진다는 말이다. 아이부터 어른까지 모두 쉬지 않고 늙어가는 것을 감안해서라도 주름이 많아지는 이유일 것이다. 우리가 새긴 편견이 주름으로 남는다. 그 주름을 보여주는 것, 보여주기 말고는 할 것이 없는 가로본능의 진위, 결국 小說의 변, 웅필이라는 말씀이다. 이제야, 소설의 변, 1부가 겨우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