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獨 작가들의 '정체성·존재' 고찰…'베를린에서 서울로: 지평선 넘어'展

 

초이앤초이·호리 아트스페이스·AIF라운지서 개최…8월24일까지

(서울=뉴스1) 김일창 기자 | 2023-07-07 14:05 송고

 

 

 베를린에서 서울로: 지평선 넘어展.
 베를린에서 서울로: 지평선 넘어展.


초이앤초이 갤러리와 호리 아트스페이스, AIF라운지는 베르멜 폰 룩스부르크 갤러리와 공동으로 오는 8월24일까지 '베를린에서 서울로: 지평선 넘어'를 개최한다.

한독 수교 140주년을 기념하는 이번 전시는 지난해 베를린에서 열린 '베를린, 서울을 만나다'(Berlin meets Seoul) 단체전에 이어 한국 작가 8명과 독일 작가 8명의 작품을 선보인다.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는 데이비드 레만(David Lehmann), 프릿츠 본슈틱(Fritz Bornstück), 헬레나 파라다 김(Helena Parada Kim), 레브 케신(Lev Khesin), 피터 헤르만(Peter Herrmann), 로버트 판(Robert Pan), 세바스티안 하이너(Sebastian Heiner), 수잔느 로텐바허(Susanne Rottenbacher), 정재호, 송지혜, 송지형, 남신오, 정소영, 이태수, 변웅필, 전원근이다.

이들은 각각 다른 방식의 작업을 이어가지만, '정체성'과 '존재'라는 공통된 주제를 통해 국경을 넘나드는 예술적 접근을 보여준다.

프릿츠 본슈틱의 그림은 버려진 문명의 잊혀진 잔재들로 구성된다. 담배꽁초와 낡은 장난감, 빈 병, 깨진 전구 등은 작가의 '문화적 재활용'을 통해 재탄생한다. 이런 쓰레기들은 종종 자연과 함께 배치되며 버려진 상태는 더욱 강조된다.

데이비드 레만은 다양한 소재와 테크닉을 사용해 아름다움과 추함을 표현하기도 하고 고대 신화나 고전문학을 현대식으로 풀어 새로운 내러티브를 창조하기도 하며, 인간의 복잡한 감정과 심리 상태를 형상화하기도 한다.

독일 베를린에서 거주하며 활동하는 헬레나 파라다 김은 이민 1세대 한국인 간호사 어머니와 스페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쾰른에서 성장했다. 다양한 정체성과 문화적인 배경 속에서 성장한 그는 우연히 보게 된 어머니의 옛 앨범 속 파독 간호사들의 모습에서 영감을 받았고, 이후 어머니의 나라인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면서 파독 간호사와 한복, 제사 등의 한국적인 소재들을 작품에 담아낸다.

동독과 서독의 분단을 목격한 피터 헤르만은 1984년 동독에서 함부르크로 탈출해 1986년부터 베를린에서 살고 있다. 일상적인 삶의 모습을 관찰하고 빈 캔버스에 인물과 도시 풍경, 일상적인 사물 등을 그린다. 그의 그림은 종종 꿈의 이미지 또는 동화 같은 이미지라고 불린다.

20세기 대형 추상화 대가들을 잇는 세바스티안 하이너는 중국과 일본, 한국 등 아시아 지역을 오래 여행한 후 작업한다. 그의 추상 작품은 중국의 추상 표현주의와 추상 서예와 같은 예술 사조의 영향을 받아 현대적으로 재해석된 것이다. '몰로크 시티'(Moloch City) 연작은 상하이에 머무르며 발전시킨 추상과 구상 회화의 종합체로, 기하학적으로 구조화된 회화적 표현이 특징이며, 인류 문명을 장악한 기계 존재가 지배하는 미래 세계를 보여준다.

레프 케신은 실리콘과 색채를 통해 차별점을 보인다. 이런 도구를 통해 암시적이고 다층적이며 색채가 강조된 회화뿐만 아니라 세련되고 경쾌한 색채의 심연에 가까운 3차원 오브제로 변형한다. 그의 작품은 수개월의 시간이 소요되기도 하며 페인팅하는 과정에서 종종 페인트가 매달려 굳기도 하는데, 이런 우연한 형태는 자신만의 느낌을 발전시키고 관람객이 만져보게끔 유도한다.
 

베를린에서 서울로: 지평선 넘어展 
베를린에서 서울로: 지평선 넘어展 


수잔느 로텐바허의 작품은 종종 공간에서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조명 기구의 정적인 형태를 뛰어넘는 역동적인 움직임을 연상시킨다. 그의 조명 설치물은 경계와 물성을 해체해 빛과 색의 공간적 발생을 창조한다.

25년 이상 레진 작업을 해온 로버트 판은 레진과 안료를 혼합하고 레이어링과 해체를 실험하는 등 오랜 창작 과정을 통해 마이크로 세계를 펼쳐 보인다. 그의 작품은 40개 이상의 레이어를 연속적으로 쌓는 등 완성까지 최대 2년이 걸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1990년대부터 독일에 거주하며 활동하는 전원근은 시간을 두고 색을 수 없이 중첩 시킴으로써 회화에 시각적 공간을 창조하고 색의 음영이 창조하는 무한한 빛과 색의 깊이를 담아왔다. 그는 캔버스에 묽은 아크릴 물감을 스무 번 이상 얇게 덧칠해 색상을 고르게 분포한 뒤 물과 붓으로 닦아 낸다. 다시 빨강, 노랑, 초록, 파랑 네 가지 색을 50겹 정도 쌓아 올리고 지우는 작업을 반복하는데, 이 작업은 길게는 1년 이상이 걸리는 수행의 과정이다.

변웅필의 인물화는 서양화의 재료와 기법을 기반으로 하지만 의도적으로 내려놓고 비워 두기를 반복하는 동양화적 작업방식을 병행한다. 독일에서부터 시작된 자화상 시리즈는 분명 작가 본인을 그린 작품이지만 감정 없는 표정을 바탕으로 머리카락, 눈썹, 피부색 등 인물을 알아볼 수 있는 특정 요소들이 지워지고 왜곡되며 추상화된다. 수많은 선입견과 편견들로부터 '나 또한 얼마나 자유로울수 있을까’하고 자문하는 작가는 이후 자화상이 아닌 인물화를 그리면서도 구체적인 디테일을 내려놓았다.

이태수의 작업은 특유의 극사실적인 묘사를 통해 우리의 보편적인 이해와 인식을 배반한다. 땅이 꺼질 것처럼 무겁고 거대한 바위와 철근은 유리잔 위에 지탱되고, 중력에 의해 바닥으로 떨어져야 마땅한 물체들은 공중에 고정되어 우리의 눈을 혼란스럽게 한다. 스티로폼과 포맥스의 구조로 제작된 이태수의 돌 앞에서 우리가 당연시 여기는 형태, 현상, 규율들이 무너지며 진실과 허구의 경계는 그만큼 더욱 줄어든다.

정재호는 강력한 자본의 힘을 뒤에 업고, 더 반짝이고 더 장황하고 더 현대적인 고층 건물들이 들어서는 이 시대에도 주름이 가득한 노인의 얼굴처럼 여전히 살아남아 한 세대의 역사를 증언하는 것 같은 건물들을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그에게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잊힌 기억을 되살리는 수단이며 과거에 파묻힌 것들을 재발굴하는 작업이다.

정소영의 조각은 우리의 삶은 둘러싸고 있는 물질이 지나온 시간을 사유한다. 어느날 발견한 작은 돌멩이에서 지구의 시간을 상상하게 되었고, 자신의 발이 딛고 서 있는 땅속으로 그리고 땅 위로 시선을 이동하기 시작한다. 이로부터 그에게 지각의 침식과 퇴적작용은 인간사의 생성과 소멸을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단서로 작동한다. 그의 상상력은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역사와 자연, 그리고 개인의 기억을 수집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든다.

남신오의 작업은 건축을 파편화하고 그로 인한 붕괴와 폐허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작품을 마주한 관람자는 작가가 만들어 낸 상상 속 건축물의 요소들을 온전히 개인의 의지로 선택하고 자르고 결합하며 그들만의 고유한 건축물을 짓는 경험을 한다. 단순히 건축물과 인간이라는 두 대상의 관계뿐만 아닌 건축물을 짓는 행위와 인간의 관계로써 현대사회의 구조 속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인간의 주체성을 환기한다.

송지형은 주제의식에 관한 질문, 관람객과의 공유에 대한 방법론을 장소 특정적 관객참여형 설치작업, 퍼포먼스 등의 방식으로 치환하고 실험한다. 초기 관심사인 '인간의 이타성'에 대한 인류학적, 철학적인 관점에서의 접근을 시작으로 주고, 받고, 응답하는 선물의 구조와 사회 안에서의 '선물'의 의의와 의미를 작업의 주제의식으로 확장했다.

송지혜는 평소 자신이 경험한 사실을 틈틈이 스케치하고 내밀한 감상을 그림에 온전히 담아내고자 한다. 그의 그림은 오늘의 전부를 옮겨 적는 일기처럼 사적이면서,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더 이상 일상적이지 않게 하는 복잡미묘한 감수성을 발휘한다. 독특하고 사소한 분위기의 인물과 유별나 보이는 사물은 익숙하더라도 옮기는 순간 특별해지고, 낯설게 만들기로 작정하여도 어느새 일상적으로 변모하는 삶의 다면함을 은유한다.


icki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