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fnnews.com/news/200708071524215972?t=y
지난해 그는 ‘민머리 자화상’ 시리즈로 미술시장에 강렬함을 선사했다. 옷을 입지 않은 상체, 눈썹도 없는 얼굴을 손으로 꼬집거나 감싸거나 유리창에 대고 일그러뜨린 것 같은 그림은 단박에 컬렉터들을 사로잡았다.
10년 만에 독일에서 유학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올 초 갤러리 현대 전속작가로 속하면서 그의 주가는 급등했다. 올 상반기 홍콩크리스티에 출품해 추정가보다 2배 높게 낙찰되는가 하면 스위스 바젤에서 열리는 볼타쇼에도 참가하며 국제 미술시장에도 그의 이름을 새겼다.
뜨거운 미술시장 앞줄에 서 있는 젊은 작가 변웅필(38)의 내공을 살펴볼 수 있는 전시가 열린다. 이번에는 붓질이 강한 자화상이 아닌 ‘아기자기한 드로잉’을 국내에 처음 선보이는 자리다. 유학시절에 늘 그려왔고 또 이보다 앞서 지난 6월 스위스 볼타쇼에서 먼저 알린 드로잉이다.
종이 위에 연필과 수채물감으로 담백하고 자잘하게 그려낸 작품들은 ‘변웅필 표 맞나?’하는 생소함이 들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민머리 자화상’의 표정과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이 드로잉은 자화상 시리즈의 모태”라는 작가의 말처럼 민머리를 한 성별을 알 수 없는 사람들은 자화상을 이어주는 ’코드’다. 드로잉 작품들의 무엇인가를 하고 있는 장면은 한편의 상황극처럼 보이지만 툭툭 놓여진 엉뚱한 소품들 때문에 내용이 모호하다.
서울 인사동 두아트 갤러리 3층에서 만나 작가는 세필을 들고 벽에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사람과 사물을 연필로 스케치한 후 수채화 물감으로 색감을 입히는 중이었다. 무슨 내용(의미)일까.
“작품 소재는 우리 생활 속의 상황을 담았는데 내 작업엔 처음부터 줄거리가 없어요. 내 생각 속의 무엇을 설명하고자 그린 것이 아니라 보는 이가 그려진 것을 상상해 줄거리를 만들도록 그리고 있어요. 이 그림을 보는 이들에게 새로운 상상력을 자극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내 작업입니다.”
작가가 창조한 그만의 형상과 수많은 그리기로 이뤄낸 당당한 필선과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은 그가 운이 좋아 반짝 미술시장에 떠오른 것이 아니라는 ‘증표’다. 이번 전시는 거대한 얼굴 그림 뒤에 숨어 있는 그의 열정, 재능과 소통하며 데이터베이스를 새로 깔 수 있는 기회다.
작가는 보이고 싶은 게 많다. 유화와 드로잉 이외에도 앞으로 조각을 선보일 욕심을 갖고 있다. 민머리 자화상과 드로잉 인물의 발을 닮은 거대한 형상의 조각이다.
8일부터 열리는 ‘변웅필 드로잉전-셀레임’은 서울 인사동 두아트갤러리(9월 청담동으로 이전)의 마지막 전시. 작가가 벽 위에 그려낸 ‘월 페인팅’도 그대로 없어진다니 참 아쉽다. 2층에는 최신작 입에 연필을 물거나 나뭇잎으로 얼굴을 가린 시원한 ‘민머리 자화상’도 만나볼 수 있다. 전시는 26일까지. (02)2287-3528
/hyun@fnnews.com 박현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