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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사람- 가족같은 116.8cm x 91cm oil on canvas 2013
[갤러리 현대 윈도우 갤러리에 걸려있는 작가의 최근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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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투데이=한수지 기자)언제나 작품을 볼 때마다 그것을 만들어낸 사람의 모습을 머리 속으로 그려보곤 한다. 처음 변웅필 작가의 작품과 마주했을 당시, 그는 매우 고집이 있고, 편하게 말을 섞기 힘든 사내의 이미지였다.

 

그도 그럴 것이 한 가지 주제를 10년 가까이 그리던 작가의 작품 속에는 눈썹도 머리도 없는 사내가 시크한 표정으로 관객을 응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작가의 얼굴이 머리 속에 또렷하게 각인되어 가던 중, 갤러리 현대의 윈도우 갤러리에 작가의 이름으로 기존의 작업들과는 다른 작품들이 걸려있었다. 궁금한 마음에 인터뷰를 요청해 홍대에 위치한 카페 베를린에서 작가와 만나 이야기할 수 있었다.


- 오랜 시간 동안 자화상을 그렸는데요,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요.

 

렘브란트나 옛날 작가들은 많이 그렸었죠. 본인의 모습을 미화하거나 후대에 남기기 위해서요. 그렇지만 제 작업은 조금 다릅니다. 저는 저를 그리려는게 아니라 제가 모델 입니다. 그냥 한 사람으로써요. 외국에서 유학을 하면서 이방인으로 살다 보니, 사람들이 외모적인 것에서부터 편견을 가진다는 것을 느끼곤 했습니다.

 

흑인, 백인 할 것 없이 사실 사람은 다 똑같은데요. 제 머리 색, 눈썹, 눈동자만으로 동양인으로 분류되고 거기서 오는 편견들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다 똑같다는 것을 작업으로 이야기 하고 싶어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의 모습을 그리되, 인물은 제 얼굴로 대치시키고 얼굴에 있는 특징을 빼고 그렸습니다. 제가 아닌 한 사람으로써의 자화상으로요. 그것이 일회적으로 끝나면 어필하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시리즈처럼 계속 작업을 이어 나가게 되었습니다.


- 그럼 유학시절부터 자화상 작업이 시작된 거네요. 굉장히 오래되었네요.

 

네. 2002년부터 거의 10년 정도 계속 그리고 있는데요, 그리 오래됐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김창렬 선생님의 경우 물방울이라는 소재 하나만 가지고 오랫동안 작업 하고 계시잖아요. 작가란 결국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만들어 내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만의 것을 만들어내는 시간으로 10년이라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한가지를 10년 이상 한다는 것 자체가 제게는 그리 특별하게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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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사람으로서의 자화상(왼쪽부터 시계방향 순)

 

한 사람으로서의 자화상180cm X 150cm oil on canvas 2008
한 사람으로서의 자화상180cm X 150cm oil on canvas 2008
한 사람으로서의 자화상-복숭아3 116.8cm x 91cm Oil on Canvas 2013
한 사람으로서의 자화상-사과3 116.8cm x 91cm Oil on Canvas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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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화라는 장르는 많은 시간과 공이 드는 장르인데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모습을 1초 만에 스마트 폰 카메라에 담아내는 시대에 한 사람으로써의 자화상을 회화로 그린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

 

독일에서 유학할 때 조소를 전공했었는데, 교수님은 설치작업을 하는 분이셨습니다. 저는 원래 한국에서는 서양화를 전공했었고요. 장르를 벗어나서 해보자는 생각에 설치하는 교수님 밑에서 공부를 했었는데, 그때 작업을 해보니 매체가 너무 빨리 변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감성이나 인체는 한계라는 게 있는데요. 그 한계점에서 벗어나 시스템이나 기계적으로 작업하는 점이 저와 잘 맞지 않았습니다. 약간 질린다고 할까요. 그런 면에서 그림이 전통적인 매체이긴 하지만 매력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 자신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을 하자고 생각했습니다.

 

기억이든 사진이든 그림이든 그 저장방식이 다른 것 일 뿐이지 저장하고자 하는 욕구는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기억은 스스로 기억하는 무형물이고, 사진은 기계적인 힘을 빌린 것이라면 그림은 인간의 노력으로 쌓인 재능을 빌려 만들어낸 유형물이라는 점에서 다른 차이와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간이 아무리 지난다 해도 인간이 갖는 한계점과 싸우는 것에 대해서는 다른 장르이지만 음악이나 스포츠와 마찬가지로 훌륭한 저장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동시대의 트렌드를 따르는 것도 좋지만 저는 과거에 선배 작가들이 했던 작업들을 되짚어보면서 그를 통해서 저만의 것을 만들어 내고 싶습니다. 그러나 회화가 시대에 뒤쳐진다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미술관에 가면 거의 대부분이 회화작품이죠. 회화는 반복되는 부분도 있지만 시대마다 다르게 표현되기 때문에 시대를 담아내는 역할 또한 한다고 생각합니다.


- 독일의 경우 신 표현주의나 라이프치히 학파 등 회화가 많이 유명한데, 회화작업을 하는데 도움이 되었는지요.

 

처음 독일 유학을 결심했을 때 학비가 없기도 했지만, 제가 좋아하는 작가들이 거의 독일 작가들이었기 때문에 독일 행을 결심했고, 굉장히 많은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독일의 경우 졸업은 신청입니다. 의무가 아닙니다. 졸업이 다가 아닌 거죠. 교수님들의 경우 일주일, 혹은 한 달, 심하면 세 달에 한 번 정도 학교에 오십니다.

 

그럼 그때, 학생들이 그동안 해 놓은 작업을 가지고 평가를 해주시는데요, 한국처럼 잘하고 못하고의 평가가 아닙니다. 개개인의 성향에 맞게, 보충해야 할 부분들을 정확히 집어주는 방식입니다. 학생들 역시 지도교수를 선정할 때도 교수의 인지도가 아닌 나와 맞는 교수를 선택합니다. 그런 뚝심 같은 것 들을 독일에서 많이 배웠던 것 같습니다.


- 어떤 작가들을 좋아했나요.

 

당시 독일 작가들은 거의 다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유학 중이었던 90년대에는 임멘도르프나 바젤리츠, 요셉 보이스, 안젤름 키퍼 같은 유명작가들이 교수진으로 있었는데요, 바젤리츠나 요셉 보이스같은 작가들은 특히나 더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 자화상이라는 하나의 주제 아래에서도 조금씩 바뀐 것들이 있었나요.

 

작업이 크게 손으로 얼굴을 일그러 뜨리는 것과 사물로 앞을 가리는 것 이렇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요, 처음에는 한 사람으로써의 자화상을 나타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고민 하다가 눈썹, 머리카락을 지우고 얼굴을 손으로 일그러뜨려 표현했습니다. 눈썹 빼고 머리카락 지우고 화장 지우고 하면 누군지 모르거든요. 내가 남과 구분되는 차별적인 요소를 빼는 겁니다.

 

그렇게 했다가 너무 반복되는 경향도 있고 인물의 주체성을 다 없앤 상태라서, 다른 것을 해보자는 생각에 인물에 사물을 넣어서 작업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요즘은 한국미술계에서 적응하고 알아가다 보니 자화상이라는 그림 장르에 한계를 느껴서 새로운 시리즈를 시도하고 있고요.


- 작업과정이 궁금합니다.

 

일단은 사진을 100-200장 정도 찍습니다. 그 중에 맘에 드는 것을 골라 그립니다. 사물의 경우도 마찬가지 이고요. 그리고 작품의 특성상 물감이 마르기 전에 연결하여 완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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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웅필 작가 [사진=강지연 기자]


- 새 작업들을 비롯한 인물 드로잉시리즈까지 모든 작업에 인물이 등장하는데요, 인물 작업을 선호하시는 이유가 있는지요.

 

우리나라는 입시미술 때 석고상을 그리잖아요. 제가 특별히 선호하는 게 아니라 그렇게 커왔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대학 실기과정에도 많이 포함되어 있고요. 인물을 그리면서 해부학도 공부하게 되고 연구를 하다 보니, 인물에 대해서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연구를 하기도 하고요. 사람 자체에 대한 관심이 자연스럽게 커졌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는 난해한 작품들을 보면서 거기에 대한 갭이 컸었습니다. 그래서 내 작업은 큰 오해가 없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자주 했었고요. 대중이 이해하는 것은 이미 예술이 아니다라고 선언했던 아방가르드 작가들의 의견에 반대합니다.

 

덧붙여 좋은 작업에 대해서 말하고 싶습니다.


대부분 작가들이 예술의 가장 궁극적인 목적은 없는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생각에 동의할 거예요. 그런데 그 때 이론이 기반이 되는 게 아니라 시각이 기반이 되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작가라면 여러 가지 해야 할 일들이 많이 있지만, 무엇보다 시각적인 발견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자화상 작업을 할 때, 이게 관객에게 어떻게 보이겠다 하고 미리 생각을 하면서 작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화상을 그리다가 무심코 형태를 찌그려 트렸는데 '어 이것도 재밌네.' 하면서 발견한 작은 순간이요. 아주 작은 우연에서 나오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형태들이 시각적으로 재밌어 보이는거죠. 피가소가 그랬죠. ‘예술은 창조가 아니라 발견이다.’라고요. 예술은 일상의 발견을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인물 작업 이외에 담고 싶은 다른 대상은 없는지요.

 

많습니다. 하지만 게을러서 미루고 있습니다.(웃음)


- 향 후 활동계획은

 

작업을 계속 하려고 합니다. 앞으로도 전업작가로 활동하고 싶습니다.


- 어떤 작가로 기억되고 싶은지요

 

없어요. 제가 기억되고 싶어서 기억되는 것은 아닐 것 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나를 보는 시각이 내가 원해서 되는 게 아닌 것처럼요. 나중에도 같은 것일 거라고 생각해요. 너무 구태의연한 이야기인 것 같지만, 어떻게 봐줄까를 생각하기보다는 그저 제 일을 열심히 하는 수 밖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 묵묵히 해나가는 것. 그러한 자세로 해나가고 싶습니다.

 

작가와의 대화를 마치면서 나는 문득, 몇 년 전에 내가 보았던 그림 속의 한 남자를 떠올렸다. 분명 그때 그림 속에 있던 사람과 오늘 내 앞에 있던 사람은 다른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나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그 당시 내가 받았던 그림 속 주인공에 대한 시각적 편견은 어느덧 눈 녹듯 사라져버렸다. 이제 내 앞에는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별반 다를 것은 없으나 그래서 더 특별하고 소중한, 한 사람으로서의 작가가 앉아있었다.

 

[한수지 기자 subi@news2day.co.kr]